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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Years in Baton Rouge15

밥을 먹어야 밥을 먹은 것 2017년 8월, 미국에서의 첫 주말 Move in 다음 날이었던 금요일에는 온갖 피로를 이기지 못한 채 낮 2시까지 잠들어버렸다. 일어나서 한참을 뭐 해야 하나 고민하다 제일 가까운 드럭스토어인 CVS에 가보기로 했다. 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으니 걸어가는 수밖에. 나름 이것저것 장 봐올 것들이 있어서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끌고 다녀오기로 했다. 카트 하나 가져간다 셈 치지 뭐, 이런 아줌마 마인드로. 걸어서 20-25분 걸리는 길은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오가던 거리인데 문제는 제대로 된 인도는 물론 횡단보도도 없다는 것이었다. 쨍쨍한 햇빛과 연한 습기는 덤. 인적은 드물었지만 다행히 바로 옆 대로에 지나다니는 차가 많아서 외지지는 않았다. 아마 차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 눈에는 캐리어 하나 끌고 .. 2021. 1. 10.
유학생활 기본셋팅 짐 풀기 2017년 8월 둘째 날 아침 7시 30분부터 시작한 International Orientation은 여느 오리엔테이션들이 그렇듯 그냥 그랬다. 학교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 제반 사안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등등. 그래도 비자 후 관련된 후속 처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 '괜히 참여했네' 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OT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어 한국에서부터 미리 계약해 둔 아파트로 들어가기 충분했다. 원래는 시차 등등의 피곤함을 감안하여 하루 더 기숙사에서 머물려고 했었는데, 월세 내고 사는 내 집에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또다시 캐리어 3개를 끌고 학교 셔틀버스 Tiger Trail을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이동하는 길은 고역이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인도 길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해.. 2021. 1. 10.
첫 눈에 반한 도시 바통루-즈 2017년 8월 9일 애틀랜타에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에 조금 잦아들었다. 아쉽게도 공항까지 가는 길에 스타벅스 들러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할 여유밖에 없었고, 공항에서는 정신없이 델타 라인 찾아 짐 수속하자마자 바로 보안검색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나 신세 지고 아무 보답 못한 채 가야 하다니. 꼭꼭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보답해야겠다 생각하며 명균오빠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국내선 비행기는 정말정말 작았다. 보딩 시간 거의 빠듯하게 들어갔는데 다행히 내가 제일 마지막 탑승객은 아니었다. 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까 했는데 건너편 옆자리에 앉은 한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나이지리아 출신 Dozie. 친형 결혼식 차 영국에 들렀다 학기 시작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고, 다리가 추워 보이는데 양말 빌려줘도 괜.. 2021. 1. 10.
애틀랜타 경유기 2017년 8월 9일 14시간 비행에 12시간 경유. 최종목적지인 배턴루지에 해 떠있을 때 도착하려면, 경유가 길어야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항에서 노숙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 얼마 전 미국으로 먼저 떠난 지윤언니에게서 출국준비는 잘 하고 있냐고 연락이 왔다. '며칠 후면 떠나요, 애틀랜타 공항에서 노숙할거에요' 했더니 언니랑 천영오빠는 공항근처 호텔에서 1박 했는데 심지어 그것도 위험한 거였다고 말린다. 애틀랜타에 1년 째 산 명균오빠에게 안전한 호텔 물어라도 보라고. 그래서 사정을 알렸더니... 이렇게 하자. 8일 저녁7시 마중을 나갈게. 숙소도 내가 알아서 잡을게. 그리고 아침 5시쯤 공항에 데려다 줄게. 걱정 말고 와. 걱정 말고 와.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마음을 녹이던지. 결국 오빠 집.. 2021. 1. 10.
애틀랜타로 향하는 DL26편에서 2017년 8월 9일 태평양을 다 건넜다. 이 비행기의 최종 목적지인 애틀랜타까지는 4시간 33분. 새 노트북을 꺼냈으니 막연한 글을 두서없이 써내려 갈 참이다. 33분간만이라도 무언가 쓸 수 있다면 충분하다. 긴 여정을 한 걸음씩 기록해두는 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이 글의 유일한 지침이라고, 방금 정했다. 한국을 떠나, 좀 더 정확히는 열아홉의 봄부터 스물일곱 여름까지 8년이 넘는 신촌 생활, 인생 제2막을 떠나 새로운 삶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잠시 잠깐 선교나 성지순례로 향했던 다른 여정들에 비해서도 훨씬 담담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이 또한 아무렇지 않다. 배턴루지의 내리쬐는 햇빛과 강한 남부 악센트를 마주하고서야 실감이 나려나. 다른 사람.. 2021. 1. 10.
가족과 이별하던 날 2017년 8월 8일 한국에서의 삶과 일상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어느덧 인천공항 가는 그 날이 다가왔다. 감정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핸드폰 장기중단과 자취하던 오피스텔 인터넷 해지 신청을 하며, 어째 이런 것도 미리미리 안 해놨을까 싶어 아쉬웠던 것 빼고는. 하루 전날까지 짐 정리에 허덕였지만 그래도 굳이 시간을 내어 엄마와 단 둘이 오후 시간을 보냈던 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동안 못 먹을 추어탕으로 몸보신하고 가장 좋아하는 카페였던 Noah's Roasting에서 커피와 디저트도 즐겼다. 루시드 드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꿈에서 꿈인 줄 아는 게 생경한 경험인 것처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자각하는 것도 생경하다. .. 2021.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