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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Years in Baton Rouge

가족과 이별하던 날

by 가나씨 2021. 1. 10.
2017년 8월 8일

 

한국에서의 삶과 일상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어느덧 인천공항 가는 그 날이 다가왔다. 감정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핸드폰 장기중단과 자취하던 오피스텔 인터넷 해지 신청을 하며, 어째 이런 것도 미리미리 안 해놨을까 싶어 아쉬웠던 것 빼고는.

 

하루 전날까지 짐 정리에 허덕였지만 그래도 굳이 시간을 내어 엄마와 단 둘이 오후 시간을 보냈던 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동안 못 먹을 추어탕으로 몸보신하고 가장 좋아하는 카페였던 Noah's Roasting에서 커피와 디저트도 즐겼다. 루시드 드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꿈에서 꿈인 줄 아는 게 생경한 경험인 것처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자각하는 것도 생경하다. 그 생경함이 선명해서였을까, 아님 이별을 앞두고 꾹꾹 눌러 담아 놓은 슬픔을 몸이 알았서였을까? 집에 돌아와 점심으로 먹은 추어탕을 몽땅 게워내고야 말았다.

 

 

출국 전 날 점심으로 먹은 추어탕. 집에 돌아와 몽땅 게워냈다.

 

 

마음으로 얻은 속병은 금방 낫는지라 다음 날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는 별 탈 없이 잘 먹을 수 있었다. 서울역 토끼정에서 네 가족이 여섯 그릇 시켜 만찬을 즐기고 공항철도 직행 표를 샀다. 네 명이서 몸을 실었지만 돌아올 때는 세 명이겠지. 마침 일주일 전 환전할 때 받은 공항철도 할인 쿠폰이 딱 3명까지 쓸 수 있는 거였다는 게 기억났다. "이 쿠폰은 나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 아빠, 현이 이렇게 셋이 쓰면 되겠다." 그 말을 하면서 조금은 씁쓸했던 것도 같다.

 

공항에 여유 있게 도착한 후 마지막으로 무게를 달아가며 캐리어를 정리하고 수속에 들어갔다. 몰랐는데, 경유지인 애틀랜타에서 캐리어를 체크아웃했다가 국내선 탈 때 다시 체크인해야 한단다. 수화물은 그냥 자동으로 연계되는 줄 알았는데 경유시간이 12시간이나 되다 보니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도 처음, 이렇게 긴 비행도 처음, 이렇게 긴 경유도 처음이다. 이십 후반까지 나름 다양한 경험들로 인생을 채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인 게 이렇게나 많았다. 그래서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사실 유학이 확정되고 출국을 준비하면서 엄마에게 몇 번 어리광을 피운 적 있었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엄마?' 그 질문에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약한 마음은 내비치지 말걸 그랬다. 다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유학이었다는 것 하나, 그 선택으로 인해 헤어짐을 겪게 된 부모님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하나. 그래서 가능하면 '어른의 모습'으로 이별하려 노력했는데 그 모습조차 부모님께는 애달픈 장면이었는가 보다. 엄마, 아빠, 참 많이도 우셨다.

 

 

한바탕 울고 조금 진정된 모습으로 이별을 맞이했다

 

낯선 곳에서 고생할 것이 자명한 유학길이지만 고생을 하더라도 거기 가서 할 일이다. 마지막 순간 여기서 해야 할 것은 가족들과 조용히 이별하는 일이었다. 그 이별 가운데 직감했다. 다 커서 떠나는 유학임에도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낯선 길로 발걸음을 떼는 것은 지나온 모든 것들과 한 걸음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유학생활이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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