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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Years in Baton Rouge

애틀랜타로 향하는 DL26편에서

by 가나씨 2021. 1. 10.
2017년 8월 9일

 

             태평양을 다 건넜다. 이 비행기의 최종 목적지인 애틀랜타까지는 4시간 33분. 새 노트북을 꺼냈으니 막연한 글을 두서없이 써내려 갈 참이다. 33분간만이라도 무언가 쓸 수 있다면 충분하다. 긴 여정을 한 걸음씩 기록해두는 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이 글의 유일한 지침이라고, 방금 정했다.

 

             한국을 떠나, 좀 더 정확히는 열아홉의 봄부터 스물일곱 여름까지 8년이 넘는 신촌 생활, 인생 제2막을 떠나 새로운 삶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잠시 잠깐 선교나 성지순례로 향했던 다른 여정들에 비해서도 훨씬 담담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이 또한 아무렇지 않다. 배턴루지의 내리쬐는 햇빛과 강한 남부 악센트를 마주하고서야 실감이 나려나.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 결심과 대단한 준비로 유학길에 오르는지 모르겠다. 내 경우, 스스로를 관대하게 바라본다 하더라도 준비된 것이 하나 없다. 원서를 준비할 때도 그랬다. 토플도 GRE도 최저선을 지키는 정도. 에세이 영작 수준도 그랬을 거고. 강한 의지와 열심과 노력보다는 ‘상황이 충분히 반영된 최선’ 정도로 임했다. 일을 하고 있다는 상황,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은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 유학을 가도 좋지만 가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나름의 즐거운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절박함 없는 준비로 원서 과정을 마무리했다.

 

             학교를 결정할 때도 학업에 대한 고려보다는 생활에 대한 고려가 컸다. 시카고의 칼바람이 마음을 얼마나 허전하게 할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던 나의 마음은 Dr. Garand의 친절한 응대에 활짝 열려버렸다. UIC의 소규모 대학원 과정은 그곳의 우중충하고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칙칙하게 느껴진 반면 LSU는 규모가 커서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연중 온화하고 맑은 날이 많다는 사실도 매력적이었으며, 학교에서 호랑이를 키운다는 사실은 어릴 적 라이온킹을 보며 가졌던 환상의 절정이었다. 아무래도 시카고보다는 배턴루지가 나와 더 어울려 보였다.

 

             삶의 중요한 일들을 이런 식으로, 이렇게 객관적 근거보다는 주관적 합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결정해 나간다면, 결국은 후회할 일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사실 조금 두렵기도 하다. 합리화가 사람의 판단력을 얼마나 왜곡시키는지 잘 알기 때문에. ‘후회하지 말자’ 라는 흔한 좌우명이 때로는 고집과 자존심, 변명과 자기위안 등으로도 철저히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기 때문에. 나처럼 종교적인 차원에서든 본래의 성향 때문이든 의미부여에 익숙한 사람은 늘 그 합리화의 덫을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합리화가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자기방어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 이라면, 본인에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 아닐까? 결국은 우리 모두가 ‘각자’ 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자신의 성향과 내면에 충실한 삶. 가령 누군가에게 있어 주관적인 합리는 객관적인 근거들과 완전히 일치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합리대로 객관적(이라 여기는) 근거들을 따라 살면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살면 된다고, 아직까지는 확신한다.

 

             다시 ‘준비’ 에 대한 점검으로 돌아가자면, 학업적으로는 정말 준비된 것이 없다. 연구주제는 러프하고 모호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석사까지는 쉬지 않고 계속 공부해왔는데, 그 모멘텀에서 벗어난 지도 2년이 다 되었다. 당장 그곳의 사람들과 가벼운 의사소통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조차 자신 없다.

 

             우습게도 생활을 준비하는 데는 시간을 좀 들였다. 살 집도 구해 놨고 그 집의 첫 달 월세도 미리 내놨다. 수화물로 부친 캐리어 두 개에는 각종 생활용품과 식기들이 가득하다. 인천공항에서 짐 몇 개를 빼는 동안 내 캐리어를 들여다본 동생은 바닥에 주저앉아 그야말로 박장대소했다. “언니 거기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살러 가는 거지?”

 

             응, 살러 가는 거야.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울고, 웃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지난 이십 몇 년간 하루하루 살아왔듯이 그렇게 살려고. 지금의 이 담담함도 특별한 각오나 다짐 없이 그저 삶을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긴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허락된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라서 어렵고 힘들겠지만, 돌아보면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지난 이십 몇 년간의 삶이 그 곳에서도 계속되리라 기대해본다. 애틀랜타까지는 이제 3시간 2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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