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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Years in Baton Rouge15

Table for One Person 그러고 보니 차임스 혼밥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버거집이나 치폴레, 루이스카페 등지에선 혼밥의 경험이 있지만 레스토랑에서는 해본 적 없었다. 바 쪽 테이블을 안내받고 나서 보니 안쪽은 식사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주문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오길 기다렸다. 분주한 반나절을 보내고 나서의 늦은 점심이었다. 학교를 떠나 곧장 집으로 가서 밥 챙겨 먹고 할 거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집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이런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가만 생각해보면 마음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일이 반이다. 그거 하나 넘어서면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데, 매번 그 앞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큰 일이 아니라 아주아주 작은 일, 이를테면 '이메일 보내서 .. 2022. 8. 19.
반딧불이 2020년 10월 5일 오늘은 여느날 보다 조금 분주한 날이었다. 오전 시간은 조교일과 미팅 준비로 흘려 보내고, 오후는 미팅, 수업 준비, 수업으로 진을 뺐다. 그렇게 하루의 분기점인 3시에 이르러 잠시잠깐 여유가 생겼을 때 빨래를 돌려놓고 간식을 먹으며 고민했다. 그냥 집에서 쉴까 학교에 갈까. 마음이 생각보다 쉽게 기울었다. 좋은 날씨 다 가기 전에 하루라도 더 자전거 타자 싶어서 저녁 도시락까지 싸들고 학교로 향했다. 때마침 픽업해야 할 책도 도착했다기에 그것부터 처리하고, 오랜만에 오피스에 앉아 오전에 못다한 조교일을 꺼내들었다. 그러다 살짝 열린 오피스 문 사이로 "혹시 한국인이세요?" 하는 반가운 소리. 이번학기부터 사회학과에서 박사과정 시작했다는 한국인 한 분을 만나 한참 담소를 나눴다. .. 2021. 3. 7.
슬로우쿡이 주는 위로 2020년 7월 21일 쿼런틴 5개월가량을 지나는 동안 삶은 많이도 무료해졌고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쓰는 방법도 거의 까먹었다. 덕분에 시간을 쪼개서라도 자주 해오던 요리에까지 흥미를 잃었다. 그 와중에 쉽게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밀키트라든가 라면, 또 주변 어른들이 해다 주신 반찬과 음식들을 데워먹는 일이 잦아 굳이 각 잡고 요리할 필요도 없기는 했다. 그러던 차에 흥미가 생긴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바로 슬로우쿡 :) 찾아보면 여러 레시피들이 있겠지만 미국 사람들이 많이들 해먹는 beef chuck pot roast 에 두 주 전쯤 처음으로 도전한 후, 오늘 또다시 시도하는 중이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별 게 없다. 그저 적당한 소고기 부위를 찾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적당히 밑간.. 2021. 3. 7.
미국 운전면허증 발급 미국에 와서 학교 측의 행정적인 문제로 고생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공공기관에서의 에피소드는 딱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뭐 결혼이나 신분 문제로 서류 처리할 일이 없었으니 Social Security Number (SSN) 발급받았던 게 유일한 경험이었다. 기다린 지 10분도 안 돼서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마저 타이밍 좋게 도착했던 기억 덕분에 미국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가 악명 높다고 해도 설마 그렇게 까지겠거니 했다. 미국 생활 4년 차이지만 아직까지 차 없이 생활하고 있는 와중에 가장 불편한 것은 차가 아니라 면허증이 없는 것이다. 신분 확인이 필요한 상황마다 여권을 들고 다니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사실 작년까지 한국 운.. 2021. 3. 7.
Scholars Walk 2019년 4월 27일 그러니까 가장 힘든 건,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멈춰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쳐도 여전히 수업을 듣고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을 뿐,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로라도 가고 있기는 한 건지, 늘 마음 한 켠이 답답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가장 큰 수확은, 나보다 한 두 걸음 먼저 걸어가고 있는 동학들로부터 참 많이 격려받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3-6년 차, 학위논문의 한, 두 챕터를 발표하는 식이었다. 2년 차라 내공이 많이 부족한 데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들고 온 나로서는, 연차의 갭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친해진 다른 발표자에게 1년 차이가 진짜 큰 것 같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5년 차라며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아래 기수들이 들어.. 2021. 1. 11.
가장 아쉬운 일 2018년 12월 31일 2018년 마지막 꿈. 꿈 속 상황은 꿈답게 초현실적이었지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엉엉 우는 꿈을 꿨다. 그러고 싶었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줄을 알았지만 그 순간도 함께이고 싶었다. 너무너무 사랑하는 우리 외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있어드리지 못한 게 올 한 해 가장 아쉽고 속상한, 사실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못 할 만큼 참담한 일이었다. 다가오는 학기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 텅 빈 할아버지 방에서, 할어버지 산소에서 엉엉 울고나면 조금은 해소될 감정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나에게 '시간'이 없다"는 진리 하나 가슴판에 아프게 새겨졌다는 사실.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사실은 내 컨트롤 밖에 있는, 하나님께서 .. 2021. 1. 10.
주시면 주시는 대로 2018년 10월 9일 장학금 타면 어떻게 어떻게 써야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잔뜩 들떠있었는데, 시상식 가는 날 비행기가 몇 분 씩 미뤄지고 미뤄져 2시간 반이나 지연되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참 많이도 낮추셨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갈 수도 없는 자리구나. 당장 몇 분 뒤에 비행기가 얼마나 지연될지도 모른 채 살아가면서 내 맘대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며 오만하게 살았구나. 우여곡절 끝에 시상식에 도착했는데 또 한 번 낮추셨다. 1등으로 수상하게 되었다고 해서 금액도 가장 많을 줄 알았는데, 다른 수상자들과 동일했다. 주시면 주시는 대로, 거두어가시면 거두어 가시는 대로 사는 삶이구나. 늘 가장 선하게, 가장 정확하게, 가장 확실하게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인 줄, 다시 한 번 믿으며... 2021. 1. 10.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018년 8월 8일 미국 온 지 딱 1년째 되는 날. 학부 졸업 예배 때 받은 글귀를 이제야 액자 사서 걸어둔다. 나 염려하잖아도 내 쓸 것 아신다는 진리가 지난 1년간 나를 자유케 했다. 때마다 시마다 도우시는 그 손길이 얼마나 섬세하신지. 이사갈 집 찾고 있을 때 과 친구가 하우스메이트 제안해주고, 침대랑 책상은 어디서 사지 고민하고 있을때 교회 집사님께서 나눔하시는 분 소개해주시고. 그 가구는 또 어떻게 옮길지 생각하기도 전에 트럭 모는 미국교회 친구한테서 기도제목 나눠달라는 연락을 받고. 생각보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여자 셋이서는 옮기지도 못했을 텐데 때마침 도와줄 다른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요몇달 이사 관련한 일만 이러니 1년을 다 돌아보면 어마어마하다. 경험하고 또 경험해도 늘 놀랍고 새로.. 2021. 1. 10.
새의 죽음과 그네들의 죽음 2018년 7월 25일 유학생활 첫 아파트에서의 삶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집 앞 현관 위쪽 모퉁이에서 꿈쩍 않고 둥지를 지키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알을 품고 있었나 보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면 가끔 머리 두는 방향만 바뀌어있을 뿐, 새는 늘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말을 걸어도 짹짹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가만히. 가끔 눈 깜박이는 게 다였다. 엊그제부터였을까. 둥지를 지키던 새가 보이지 않았다. 먹이를 구하러 갔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외출 후 돌아와서 봐도 둥지는 비어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몇 번을 내다봐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왜 돌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이사할 집에 짐을 한 차례 옮겨놓은 후 돌아와 둥지 근처를 자세히 살펴봤는데 바로.. 2021.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