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9일
14시간 비행에 12시간 경유. 최종목적지인 배턴루지에 해 떠있을 때 도착하려면, 경유가 길어야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항에서 노숙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던 찰나, 얼마 전 미국으로 먼저 떠난 지윤언니에게서 출국준비는 잘 하고 있냐고 연락이 왔다. '며칠 후면 떠나요, 애틀랜타 공항에서 노숙할거에요' 했더니 언니랑 천영오빠는 공항근처 호텔에서 1박 했는데 심지어 그것도 위험한 거였다고 말린다. 애틀랜타에 1년 째 산 명균오빠에게 안전한 호텔 물어라도 보라고. 그래서 사정을 알렸더니...
이렇게 하자.
8일 저녁7시 마중을 나갈게.
숙소도 내가 알아서 잡을게.
그리고 아침 5시쯤 공항에 데려다 줄게.
걱정 말고 와.
걱정 말고 와.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마음을 녹이던지. 결국 오빠 집 근처 가정집에 묵는 일정으로 에어비앤비 알아봐주시고, 8일 저녁 공항까지 마중 나오시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만나 다시 국내선 공항까지 라이드...해주시는 걸로 이야기가 됐다. 벌써부터 이런 신세라니. 너무 감사하고 민망해서 마음이 자꾸만 울렁거렸다.
장시간 비행을 위해 고른 책은 소민이에게서 선물 받은 에세이였다. 자주 들르는 블로그 주인이 낸 책인데, 해외에서의 일상을 오랜시간 블로그에 포스팅하다 책까지 내게 되었다고. 특히 작가분이 뉴올리언스, 그러니까 루이지애나 주에 살았으니 더 공감대가 많지 않을까 하며 골랐다고. 정작 나는 이것저것 실질적인 준비에 정신이 없어 새로운 정착지에서의 삶을 기대할 정신이 없었는데 친구가 골라준 책에는 그런 기대감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책은 잔잔하게 재밌었지만, 여전히 앞에 펼쳐질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냥 기내식이 맛있다, 생각보다 자리가 불편하지 않네, 이런 저런 가벼운 생각들로 오랜 비행을 무사히 보낸 것 같다.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 제 시간에 잘 도착했고, 수속 밟는 데도 문제가 없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게다가 내가 선 줄에서만 자꾸 문제가 생겨서 한 사람 수속에 15분씩은 걸린 것 같다. 밖에서 명균오빠, 지윤언니, 천영오빠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핸드폰 와이파이는 안잡히고, 시간은 야속하게도 2시간이나 흘러버려 마음이 초조했다. 뒤늦게 노트북이 생각나서 와이파이를 잡고 페북메세지로 연락하니,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나오라는 언니오빠의 다정함. 으아 정말 이게 무슨 민폐야.
수속을 마치고 baggage claim으로 나가니 내가 거의 마지막이라 짐도 다 나와있었다. 카트에 짐을 다 싣고 신나게 나가는 길에 정훈오빠와 마주쳤다. 오빠는 석사하러 노스캐롤라이나로 가는 길이라고. What a small world! 이런 우연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다리느라 많이 지치셨을 텐데도 밝게 맞아준 언니오빠들 덕분에 겨우 한시름 놨다. 그리고 너무 반가웠다. 이 낯선 땅에 혼자 도착했는데 든든한 지인 세 명이 잘 왔다고, 고생했다고, 다독여주니. 그렇다고 오래 감상에 젖어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으니 에어비앤비로 예약해 둔 가정집에 들러 체크인 먼저! 호스트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짐만 두고 다시 나온 다음 늦게까지 하는 펍으로 향했다.
펍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2층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피쉬앤칩스와 음료를 시키고 짧은 시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에 결혼하고 유학 온 명균오빠, 올해 결혼하고 유학 온 천영오빠지윤언니. 혼자 온다는 사실 자체는 별로 걱정거리가 아니었는데, 언니오빠들 눈에는 걱정스러운 일이었나보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 얘기들이 얼마나, 얼마나 고맙던지.
숙소에 돌아와 씻고 누우니 새벽 2시쯤 되었다. 시차가 어떻게 꼬인건지, 내 몸 컨디션은 지금 어떤지,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자둬야 버틸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명균오빠가 픽업 오는 시간은 아침 6시 반. 부디 아침에 늦는 일 없이 제대로 깰 수 있길 기도하며, 길었던 비행을 비로소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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