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귀국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엉켜있었다. 동생 결혼 전 최소 한 달은 가족들과 함께하며 이것저것 도와주고 싶었기에 자가격리 포함 한 달 반 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비행기 표를 끊어놨었다. 그렇게 정해진 '4월 중순'은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학기 중 출국이라는 것도 심적으로 부담이었지만, 무엇보다 백신 일정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판데믹 이후 첫 귀국이니 백신을 맞고 가면 비행기에서도 마음이 놓이고 한국에서의 3달 동안 여러 일정을 소화하는 데도 편하겠다 싶었다. 사람도 많이 만날 거고 국내 여행도 많이 다닐 거니까. 1년 만에 다시 올 줄 알았던 한국을 2년 만에 오게 된 게 서럽기도 했고 더 그립기도 했고, 그러니 이왕 가는 거 코로나에 잘 대비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주 정부에서 순차적으로 접종대상을 확대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어 보였다. Teacher 는 애초에 우선접종대상 직업군이었지만 이번 학기에는 teaching 을 안 하고 있었기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판단했었고.... 흡연자나 흡연 경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임산부는 실제 흡연 여부나 임신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도 맞을 수 있다기에 룸메이트를 비롯하여 다른 친구들도 '그냥 담배 피운다 해', '임신했다 해' 하며 접종을 권하기도 했다. 그것 참 쉽고도 간단해 보였다. 어차피 그런 사람 많을 텐데 나도 그래 버릴까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이걸 맞아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이 작은 일도 삶의 태도 및 가치관을 이루는 한 조각임을 알기에 쉽게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이 작은 일조차 하나님께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했다. 이 작은 일도 하나님 인도하신다고.
Dear heavenly father, if you are gonna protect me via vaccine, please let me get it before I leave. If vaccination is a little dangerous as some people believe, and if you plan to protect me without it, please give me peace and strength.
이 기도를 드린 그 다음주가 출국 전 2차 접종 완료를 고려하였을 때 파이자 1차 샷을 맞을 수 있는 마지막 주였다. 1차와 2차 사이에 3주 (파이자) 나 4주 (모더나) 텀을 둬야만 하는 백신 접종 일정으로 인해 '지금 아니면 아예 못 맞는' 한계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룸메이트는 그 주 바로 며칠 전에 1차 접종을 완료한 상태였다. '아, 나도 룸메이트 맞을 때 그냥 거짓말 해서라도 같이 맞을 걸' 하며 후회막심, 뒤늦게 이곳저곳 월마트나 cvs 등 약국을 찾아봤지만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결국 못 맞고 가는구나' 이런 아쉬운 마음에 마음이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 나는 미국 시민도 아닌데 뭘 기대하겠어', 이런 외국인 유학생의 자격지심과 무기력함도 씁쓸함을 보태었다.
그 주 금요일 오후, 갑자기 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과 대학원 코디네이터인 캐서린이 외국인 대학원생들 다 teacher 자격으로 백신 접종시켜주려 한다고. 특히 가나 너 한국가는 일정을 캐서린에게 얘기했더니 오늘내일 중에 꼭 맞아야 한다고 오후에 당장 병원에 가자는 거였다. 백신은 예약제이기 때문에 무조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데, 큰 병원에서 일하는 캐서린의 간호사 친구가 매일 여분의 백신이 남는다는 정보를 준 것이다. 캐서린은 우리 엄마 연배인데 원래도 대학원생들에게 친절하여 Mama Katherine 이라고 불리는 분이었다. 이번 학기 티칭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대학원생들은 teacher 자격이 있는 거라며 자기가 보증하겠다는 캐서린을 통해,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불행히도 그날은 병원 3군데를 돌아도 여분의 백신을 확보할 수 없었고 병원에서는 웹페이지 예약을 해야지만 확실한 접종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주에 월마트, cvs 알아봤을 때는 이미 스팟이 하나도 없었는데 병원이라고 별 수 있겠어'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이트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이게 웬 일. 그다음 날 오후 늦게,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 소식을 캐서린에게 알렸더니 그녀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라이드를 해주겠다며 더 큰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결국 3월 20일 토요일 오후 4시, 파이자 첫 번째 샷을 맞을 수 있었다. 2차 접종은 4월 10일 토요일 오후 4시, 출국 이틀 전으로 예약이 잡혔다.
그러나 2차 접종이 한 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Katherine 과 과 친구들이 2차 접종 후 2-3일 동안 후유증이 심하다며 비행기 타기 전 열이 나거나 너무 아플 수도 있으니 하루 이틀 일찍 맞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다른 상황이 없었다면 당연히 그랬겠지만 최근에 입국 규정이 바뀐 게 문제였다. 해외 출국 72시간 이전에 코로나 PCR 테스트를 해서 음성판정서를 받아와야 하는 상황. 혹시 모를 비행기 딜레이와 주말이 끼는 상황을 고려하여 무사히 출국 전에 결과를 받으려면 9일 금요일 늦은 오후에 테스트를 받는 게 제일 나아 보였는데, 만약 그 이전에 백신을 맞으면 테스트 결과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만약 금요일 저녁, 그러니까 PCR 테스트 직후에 접종을 한다면 그날 밤에 예정된 기도회와 그다음 날 아침에 있을 한글학교 둘 다 부작용 때문에 참여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모처럼 만의 평일 기도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우리 가나반 아이들이 한글학교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알기에 책임감 없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최대한 앞으로 당길 수 있는 일정은 10일 토요일 오후 1시, 한글학교 수업이 끝난 직후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약 변경이 망설여졌다. 무리 없는 비행을 위해 금요일에 맞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과연 3시간 앞당기는 일정이 큰 영향을 가져올지, 부작용은 얼마나 심할지, 이런 여러가지 생각에 머리만 복잡했다. 그리고 백신 일정 외에도, 다른 여러 일들이 한 데 복잡하게 엉켜 심적으로 많이 지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엎드렸다. 엎드려 기도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그저 내 모든 상황을 맡겨드리는 기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막상 기도를 끝내고 보니 10분 정도밖에 안 지나 있었지만, 오랜만에 온 마음을 다해 올려드린 기도였음이 느껴졌다. 또 지난 여러 날동안 나는 이렇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는 않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게 아마 접종 3일 전 목요일이었나. Ms. Kim 맞냐는 질문에 기분이 싸했는데, 병원이었다. 토요일 오후 4시로 2차 접종 예약이 되어 있는데 그날 병원 문을 조금 일찍 닫아야 한다면서 혹시 앞으로 당길 수 있겠냐는 거였다. 덜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혹시 오후 1시쯤에 자리가 있냐고 물었더니 12시 50분에 스팟이 비어있다며, 그때로 예약을 옮기겠다 해주었다. 2분 여의 통화를 마치고 잠시간 멍했다. 그리고 울음이 터졌다.
모든 상황과 일정이 쉽지 않고 복잡했는데. 그 모든 복잡함과 불확실성 가운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라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는데. 내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상황을 정리해주신 거였다. 그 전날 드린, 아무리 마음을 다했다지만 짧디 짧은 10분 짜리 기도에 대해 이렇게 바로, 이렇게 세밀하게 응답해주신 거였다. 3시간의 접종 시간 차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계시다는 그 사실이 너무 큰 위로이자 안도이자 감사와 죄송함이었다.
이렇게 친히 개입하고 계시니, PCR 테스트 결과도, 백신 후유증도, 출국의 모든 과정, 입국 후 대구까지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자가격리까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비단 이 일련의 일들 뿐만이 아니라 유학 생활, 박사 과정, 앞으로 남은 모든 삶의 여정과 인생길 모두, 이 일들에 개입하셨던 것처럼 일하실 것임을 다시 한번 믿게 되는 계기였다. 생각해보면 이런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겪어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사실은 인생의 마디마디 마다 숱하게 많이 겪어왔는데도 매 순간 당황하고 스트레스받고 헤매는 걸 보면, 나도 정말 별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인생의 여러 문제와 고민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소중한 계기들이 됨을 이제서야 실감한다는 거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엎드릴 때마다 더 큰 감동의 울음을 터뜨리도록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그래, 이번에는 정말, 두 차례의 백신 일정에까지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다정하심에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침 전화를 끊고 나서 엉엉 울었던 그 기분과 상황은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날도 벌써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 되었다. 백신을 맞은지는 56시간이 지났고, 첫날 팔이 조금 뻐근했던 것 말고는 여태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지금은 애틀랜타 발 한국행 비행기 안. 타이핑을 하고 있는 이 순간, 한국까지 3시간 8분 남았단다. 준비과정까지 생각하면 참으로 긴 여정이지만 출국-입국 전체 과정의 절반은 훌쩍 지난 것 같다. 집에 도착하여 안도하는 마음으로 샤워를 하기까지, 함께 하실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하며 힘을 내본다. 얼른 나와라, 마지막 기내식!
* 그렇게 기대했던 마지막 기내식은 맥모닝 에그치즈만 못해서 실망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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