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신혼여행을 다녀온 즈음이었나. 아빠 스스로도 민망해하시며, 그러나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대학은 가나처럼 가고 결혼은 가현이처럼 하면 되는 거야."
남들이 들으면 욕하거나 비웃는다고 엄마가 핀잔을 주셨지만, 나는 아빠의 저 한 마디에 담긴 마음이 너무너무 감사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가 아니라, 좋은 조건으로 결혼해서가 아니라, 큰 일을 큰 일 답지 않게 치러낸 것에 대해 기뻐하시는 아빠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아빠가 도와준 것, 힘써준 것 하나 없는 데도 수월하게 자기 길을 찾아간 두 딸에 대한 아빠의 기특함이었다.
그리고 아빠의 욕심 없음이기도 했다. "언니처럼 공부하고 대학가야해" 라는 잔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아빠 (물론 엄마도). 자기 인생이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라도 자식들을 통해 욕심 채우려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만큼 쉽지 않은 인생길을 걸어오신 아빠지만, 그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원망치 않고 감사히 여기며 살아오셨음이, 자식인 나의 눈에도 보인다. 그러지 않으셨더라면 "가나 너는 너에게 맞는 길이, 가현이 너는 너에게 맞는 길이 있는 거야" 라고 얘기해주실 수 없었겠지. 결혼 준비로 한창 정신없던 때, 동생 먼저 결혼하는 것이 마음 불편하지는 않냐며, 아빠는 하나님이 가나한테 제일 맞는 사람을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씀해주신 그 다정함을, 나는 아마 평생 따뜻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 오는 날은 짚신 장사 큰아들을 걱정하고, 해 쨍쨍한 날에는 우산 장사 둘째아들을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하나님을 믿는 부모라면 비 오는 날에도, 해 쨍쨍한 날에도 감사밖에 드릴 것이 없나 보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아빠와 엄마를 통해 경험하게 하심이 감사하다. 더불어 동생과 내가 각자의 삶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음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한 배에서 나와 다른 성격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우리지만, 나는 나대로 현이는 현이 대로 엄마 아빠의 기쁨이 된다는 것.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자녀로 삼아주시고 한 명 한 명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지 않을까 싶다.
가족을 통해 느끼는 하나님 나라가 선명할수록, 그 행복이 손에 쥐어질수록 자꾸만 다가올 이별을 생각하게 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이 마음도 하나님은 다 아시겠지. 얼마 전 난데없이 엄마가 슬퍼 보여서 "엄마 왜 그래?" 하고 물어봤더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대답하셨던 게 기억난다. 나도 엄마 나이 즈음이 되어, 부모님 먼저 하나님 품에 보내드리게 된다면, 이번에 한국에서 보낸 몇 달이 참 많이 떠오를 것 같다. 미리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나날들을 벌써부터 마음속에 그려보는 걸 보니, 정말 어지간히 다시 유학생활로 돌아가기 싫은가 보다. 엄마 아빠 곁에 그냥 있었더라면 됐을 걸, 아 나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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