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7일
그러니까 가장 힘든 건,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멈춰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쳐도 여전히 수업을 듣고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을 뿐,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어디로라도 가고 있기는 한 건지, 늘 마음 한 켠이 답답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가장 큰 수확은, 나보다 한 두 걸음 먼저 걸어가고 있는 동학들로부터 참 많이 격려받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3-6년 차, 학위논문의 한, 두 챕터를 발표하는 식이었다. 2년 차라 내공이 많이 부족한 데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들고 온 나로서는, 연차의 갭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친해진 다른 발표자에게 1년 차이가 진짜 큰 것 같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5년 차라며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아래 기수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너가 1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끼기 어렵지. 나도 그랬어."
그 말에 지난 4학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상태로 꾸역꾸역 수업을 따라가고, 감당 안 되는 리딩리스트에 허덕이다 석사 때 읽은 논문 하나라도 있는 주에는 그게 그렇게 신나서 여유를 부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관심 1도 없는 과테말라 선거 데이터 코딩에, 듀타임 1분 전에 제출한 수많은 쪽글들. 그 파편 같은 일상에 치여 몰랐는데, 조금씩 조금씩 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 (이론이든 방법론이든) 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 걸음씩 배우고 익혀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산다.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언제 여기까지 와버렸는지, 언제 이 모든 것을 다 지나게 되었는지. 계절의 변화가 그렇고, 사랑이 시작될 때가 그렇고, 작은 선택이 이끌어 온 지금의 인생길이 그렇다. 인간을 겸손하게 두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지도 모르겠다. 지독한 클리셰지만, 딱 한 걸음씩, 딱 오늘만큼, 딱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게 인생의 정공법인가보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
그 섭리 안에서 여기까지 왔다. 한 주만 더 살아내면, 길었던 2년 차도 끝이다. 한 주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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