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5일
유학생활 첫 아파트에서의 삶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집 앞 현관 위쪽 모퉁이에서 꿈쩍 않고 둥지를 지키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알을 품고 있었나 보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면 가끔 머리 두는 방향만 바뀌어있을 뿐, 새는 늘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말을 걸어도 짹짹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가만히. 가끔 눈 깜박이는 게 다였다.
엊그제부터였을까. 둥지를 지키던 새가 보이지 않았다. 먹이를 구하러 갔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외출 후 돌아와서 봐도 둥지는 비어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몇 번을 내다봐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왜 돌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이사할 집에 짐을 한 차례 옮겨놓은 후 돌아와 둥지 근처를 자세히 살펴봤는데 바로 아래쪽에서 깨진 알 하나, 자그마한 새끼 새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너무 놀라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 집에 들어와서는 엉엉 울었다. 오후 늦게 다시 나갈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가 보게 됐다. 현관 바깥쪽 지붕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늘 둥지 안에 있어 머리만 보이던 그 새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몇 초에 한 번씩 울고 있었다.
'이사 가기 전에 새끼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는 애초에 작은 기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런 장면을 마주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더위 가운데 진득하게 앉아 알을 품던 어미새의 노고도,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날기도 전에 죽어버린 아기새도, 이다지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기껏해야 새일 뿐인 새의 죽임인데, 생명을 잃음으로 잃어버린 생이 이렇게 서글프다.
돌이켜보니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은 도처에 즐비하다. 어린이집에서, 도로 위에서, 군부대 안에서, 어느 고층 아파트 아래에서, 제각각의 이유로 생을 잃어버린 혹은 놓아버린 그네들의 삶은 하나하나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작은 새의 생명에도 많은 시간과 많은 사연이 담겨있을진대, 어느 누구의 삶인들 가벼울 리가 없다. 어쩌면 그네들의 죽음을 스치는 이야기로만 접해 듣는 먹먹함이 작은 새의 죽음으로 왈칵 터져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죽음에 대해 지금 이 밤에도 지붕 위를 떠나지 않고 있는 그 새 같을 수는 없다. 본인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 남의 무거운 삶이 다했다는 소식에 한 번 놀라고 말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과 그로 인해 퍼져가는 삶의 메아리를 가볍게 입놀림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비꼼으로든 감성팔이로든 어떻게든 이 죽음과 저 죽음을 이렇게 저렇게 써먹으려는 모습이 역겹다. 생명을 다한 사체에 기웃거리는 건 구더기, 파리, 쥐, 혹은 그 어떤 들짐승들 뿐이다.
유학생활 첫 1년을 마치고 이사를 준비하던 즈음 페이스북에 남긴 글. 한국에서 들려온 故 노회찬 의원의 투신자살 소식에 마음이 무겁던 찰나였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최대한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는데, 이 날의 에피소드로 마음이 울컥- 하고 터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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