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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유신론자의 자아성찰

다시 떠오른 질문 앞에

by 가나씨 2025. 10. 21.

20대 중반, 그러니까 10여 년 전 꽤 오랜 기간 마음속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수많은 예배와 말씀의 자리에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다짐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건지. 지체들과 이런 마음을 나누거나 목회자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마땅한 지침을 얻지 못해 답답했다. 그저 '그런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너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기뻐하시겠니?' 이런 격려만 얻고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항상 만족이 없었다. 그렇게 목마른 심정으로 답을 찾아 헤매던 때 만나게 하신 말씀. 미가서 6장 8절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게 된 그 순간의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람아, 그분이 네게 말씀하셨다. 무엇이 선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너희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그렇구나. 옳은 길을 분별하여 따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 앞에 겸손히 행하면 되겠구나. 어찌보면 이 또한 추상적인 행동지침이지만 답을 찾아 헤매던 스물 중반의 나에게는 오랜 목마름을 해소해 준 정확한 말씀이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답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줄만 알았다. 


오늘 아침, 여러 상황들 —직장, 연구, 결혼, 관계, 사역—을 놓고 기도하는 중에 이 질문이 다시금 마음 속에 떠올랐다. "하나님 아버지, 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먹고사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걱정이 없도록, 요새 누구나 다 시도해 본다는 AI기반 수익 구조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건 아닌지, 결혼 시기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비자/신분 타이밍이 맞는지, 관계와 사역에 있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등등. 정답은 없다 할지라도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설령 안다 한들 감당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는데... 그저 무기력할 뿐이었던 기도를 마음 다 해 올려드리고, 밀린 말씀묵상 진도를 따라잡으려 마태복음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정말, 말씀에 답이 있었다. 말씀이 답이었다.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생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는 역사 그 자체였다. 그가 유일하게 반복해서 사용한 표현이 바로 "(이렇게 하여, 그래서, 이것은, etc.)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였다는 걸,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1:22, 2:15, 2:17, 3:14, 8:17, 12:17, 13:14, 13:35, 21:4, 27:9). 그 관점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주기도문, 마 6:9-13)를 묵상하니, 감회가 새롭다. 온 땅을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그분의 나라, 그분의 다스리심을 온전히 인정하고 그 통치에 순복 하되, 이 땅을 살아가며 필요한 물질과 죄 사함의 은혜를 겸손히 구하는 게 다인 그런 기도인 셈이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그 기도면 충분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사셨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공생애 기간 동안은 엄청 부지런히, 밤낮없이, 이곳저곳에서 하나님 뜻을 가르치시고 설파하시는데 어느 하나의 행동도 하나님 뜻에 어긋남이 없게 하셨다. 죽으심을 염려하고 만류하는 자들에게 호통을 치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16:23, 26:54).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려드린 그 간절한 기도도 결국은 같은 내용이었다 (26:39, 42, 44). 인간으로서의 당신 삶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공(時空)일 뿐이라고 인식하셨고 인정하셨고 순복 하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 뜻대로 살다 죽으셨고, 역시나 하나님 뜻대로 부활하셨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하는 나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나.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건 위험하고도 감당 못할 짓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을 때 다니엘이 두려워서 식음을 전폐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그분의 뜻을 구하여 알게 된다 한들,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내가 과연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고 따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나의 그릇을 아시고 다 알려주지 않으시는 거라면 그 또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일 테니, 어쩌면 정말 뜻을 모른 채 그저 삶을 내어 맡기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알려달라는 간구보다,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의 연약함과 악함을 들어 쓰셔서라도 결국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실 주권자 하나님이시지만, 나의 어떠함이 그분께 작은 걸리적거림이라도 되지 않기를. 그저 그분이 이끌어가시는 삶의 자리, 빚어가시는 삶의 형편 가운데, 하나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겸손히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런 삶을 통해서만, 그토록 닮고 싶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과 생애를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도리어 소망을 갖게 된 아침 묵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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