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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유신론자의 자아성찰

내 욕심이 하나님 뜻을 망치지 않도록

by 가나씨 2022. 7. 7.

연세대와 청소노동자 간 갈등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내가 학부 신입생이었던 09년부터 석사 과정을 마친 15년도까지 수많은 투쟁과 협상의 과정을 목도해왔다. 그 사이 학교 리모델링도 있었다.

 

사회과학도 관점에서의 해석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관점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거다. 이웃사랑과 공의라는 진리 위에 세워진 모교가 자본과 권력의 논리 따라 경영되고 있다는 점. 청소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가 ‘비용 절감’일진대, 세이브한 예산이 가장 크게 사용된 항목 중 하나가 길을 닦고 삐까뻔쩍한 건물을 세우고 수익을 내기 위한 기반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재학중이던 7년 간은 그랬다. 수리가 필요한 부분을 보수하고 위험한 시설을 철거하고, 이런 데 쓰이는 돈이 아니었다. 건물이 내실을 갖게된 것보다도 방문객들이 우와- 할만한 변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도 어쨋거나 자본이 있어야 굴러간다는 전제 하에 돈 버는 기계를 하나 둘 설치해나갔다 (이를테면 금호아트홀이라든지 학교 안 상업시설이라든지) 학교의 ‘현대화’와 ‘국제화’라는 명목 하에, 참 많이도 쏟아부었다. 그럴 돈은 있었고 청소노동자들의 기본적 요구를 맞춰줄 돈은 없었다.

10년, 20년 뒤에는 오히려 잘 한 선택이었다고 칭찬받을만한 일이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본질을 벗어난 일이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타락처럼 보였다.

 

재건축을 마쳐 휘황찬란해진 학교를 따릉이로 한 바퀴 돌며 참담한 심경으로 기도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때쯤 교회 성전보수도 시작되어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었다. 때마침 한국을 떠나 타국으로 유학오는 해, 학생회관에는 이한열 선배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6월이었다. 완공된 학교를 거닐 때면 너무 멋지다, 너무 좋다, 이런 마음을 감출 수 없으면서도, 이것이 과정 미션스쿨에 합당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결정이었는가, 그리고 바른 과정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떠한 정신으로 어떠한 가치를 위해 계획된 공사인지, 알 길이 없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 돌보시고 은혜 내리시기를 간절히 구했다.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이 드러나려 하는 모든 순간마다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그 모든 더러움을 선으로 바꾸어 달라고, 그렇게 기도드렸다.

 


 

잦은 과식이나 스트레스로 한 달에 한 번 쯤은 꼭 체하곤 하지만, 체해있는 때에도 끼니마다 배가 고프고 화장실도 문제 없이 가는 나였는데. 22살에 크게 고생한 이후 처음으로 몇 주간 체기를 달고 살고 있다. 지난 주 부터는 배도 안고파져서 하루에 한끼만 먹고 있는데 그마저 소화가 잘 안 된다. 지인 한 명이 우스갯소리로 “아파서 체한거면 불쌍할텐데 많이 먹어서 체한 거라 안 불쌍하다” 한다. 그 말이 맞다. 돌이켜 보아 지난 한 달, 그냥 숟가락 내려놓아도 될 것을 한 대접 더 먹고 안 먹어도 될 디저트도 굳이굳이 두세번씩 챙겨 먹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식욕이 과했다. 많이 먹고, 많이 먹고, 또 먹었다.

여은이와 은혜는 ‘식욕이 언니 유일한 욕심 아니냐’ 하지만, 식욕만 욕심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만큼, 내 다른 욕심들을 다 가릴 만큼 먹는 데 있어서의 욕심이 겉으로 잘 드러나는가보다. 잘 관리해야겠다고, 잘 다스려야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고 있는 요즘이다.

 

오늘 아침 모교를 위한 기도 끝에 펑펑 울게 하심은, 하나님 뜻대로 세우신 학교를 인간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그 욕심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을 보며, 하나님 뜻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 같은 학교와 교회를 보며, 참 많은 순간 분노하고 기도하였다. 하나님 ‘저들을’ 좀 불쌍히 여기달라고. 저 거대하게 조직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탐심과 자기주장을 좀 깨닫게 해달라고. 그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다. 마치 나는 그렇게 살고있지 않은 척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위한 기도 가운데 깨달아졌다. 욕심이다. 욕심이 망친 거다. 내 욕심이 내 장기와 몸을 망쳤다. 하나님 지으신 그 온전하고 거룩한 모습, 본연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을진대, 내 몸도 그러한데. 내 욕심 부려 마음껏 채워가며 내가 망쳐놓았다. 그게 어디 몸 뿐이랴. 나 역시 참 많은 순간 주신 삶을 내 욕심껏 경영하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에 마음이 무너졌다.

 

오래동안 낫지 않게 해주셔도 괜찮겠다 싶다. 평생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하나님의 음성을, 체기 가운데에서도 찾게 하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누군가 내 삶을 보며, ‘저 사람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저렇게 자기 욕심껏 사네’ 하고 손가락질 하는 일 없도록. 하나님께서 내 삶을 보시면서 ‘너는 입으로는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너 자신만을 사랑하며 사는구나’ 통탄하시지 않도록. 믿고 의지하는 자의 이름에 걸맞게 내 욕심 내려놓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을 결단하라고, 지금의 이 시간도 허락하시는 구나 싶다. 학교도, 세상도, 내 작은 삶도, 인간의 욕심으로 망쳐지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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