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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유신론자의 자아성찰

열린 길도 생명의 길, 닫힌 길도 생명의 길

by 가나씨 2022. 4. 13.

아침에 이 이메일을 받고 찰나의 아쉬움 없이 받아들여지는 은혜를 누렸다. 그리고 든든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사이 박사과정 5년 동안 교내외 펀딩을 꽤 여러 차례 지원했는데, 어떤 건 허락하시고 어떤 건 허락하지 않으셨는지가 명확히 깨달아져서였다.

이번에 떨어진 ISA fellowship의 경우, 지도교수가 평소답지 않게 지원을 적극 격려하고 도와줬었다. 리서치 핏이나 지원 조건이 여러모로 잘 맞아 떨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심사 커미티 체어가 자기랑 같이 일한 적 있는 교수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해서, 너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얘기해주는 지도교수 말에 인간적인 기대감이 차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인간적 셈법과 가능성을 의지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인간적인 승률이 높은 게임에서 이겨버리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하나님 곁을 떠나 인맥과 줄서기 등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살아가는 길을 기웃거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런 게임에서 패했다는 소식은, 아쉬움이 아닌 안도감을 남겼다. “아, 하나님 정말, 다른 길 기웃거리지 못하게 만드시네, 이렇게 단단히 붙들고 계시네,” 하는 마음이 오늘 하루 나를 든든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경험을 2-3년 전에도 한 적이 있다. 2년차에 외부 장학금 하나를 받고 나서, 그다음 두 해 연속 같은 장학금에 지원하며 참 오만했다. "작년에 chair scholarship을 수상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받겠지"라는, 나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그 재단에서는 이전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수상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몇 해 연속으로 장학금을 타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두 번의 지원 모두 고배를 마셨고, 순간적인 서운함과 속상함을 경험했지만, 결국엔 회개의 길로 이끄시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받게 된 펀딩은 모두 다 가난한 마음과 상황에 꼭 맞는 것들이었다. 2년차에 받았던 그 외부 장학금이 없었더라면, 그 당시의 어려웠던 재정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절박한 필요에 맞추어 적절하게 내려주신 은혜였다.

올초 다른 친구와 한 팀으로 받게 된 외부장학금은 애초에 받을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내가 아니라 상대가 리드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친구가 작성한 프로포절 초안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수준 낮은 프로포절로는 펀딩 못 딴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교만을 보시고, 하나님은 보란 듯이 내 코를 납작 누르시며 펀딩을 허락하셨다. 비슷한 시기에 ISA 펠로우쉽을 지원하면서 그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 속을 들여다보시고는, 하나님 많이 웃으셨겠지.

다음 학기부터 받게 될 교내 장학금 역시 될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친구 한 명이 지나가는 소리로, "그 장학금은 교수 추천서가 제일 중요하대"라고 했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감 며칠 전까지 지도교수 추천서 여부가 불투명해 지원 자체를 못할 뻔하기도 했었고, 다른 교수 추천서 하나도 strong enough 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되게 하셔서, 진심으로 회개와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릴 수 있게 인도하셨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self-identify하는 나도 이렇게나 세상의 소리와 기준을 많이, 그리고 자주 의지한다. 비단 펀딩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길목길목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기회와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세상의 기준으로 미래를 전망하곤 한다. 그런 어리석은 나에게 지난 5년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가르치시는 것은, 세상적인 calculus가 하등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스스로 높아져 파멸의 길로 가지 않게 하시려고, 세상 헛된 신을 의지하다 넘어지지 않게 하시려고, 어떤 길은 여시고 어떤 길은 닫으신다. 그러니 열린 길도 생명의 길이고 닫힌 길도 생명의 길이다. 이러나저러나 드릴 것은 감사, 그리고 매 과정마다 여지없이 드러난 내 죄성에 대한 회개뿐이다. 부족함을 채우시는 것보다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시는 섭리가 이토록 달다. 이 섭리 안에 있음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해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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