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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유신론자의 자아성찰

광야를 지나며

by 가나씨 2022. 2. 24.
잠언17:1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이 말씀대로 마른 빵 한 조각을 먹더라도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지향한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남들보다 욕심이 적다고. 욕심을 이루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고, 다만 주어진 상황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여태껏 무엇이든 -입학, 졸업, 취업, 유학, 등등- 무탈하게 잘 지나왔으며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은연중에 되묻곤 하였다.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큰 위선과 교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타고난 데다 후천적인 교육도 나쁘지 않게 받아 왔다는 생각. 그래서 남들이 성공을 향해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고 애쓸 때, 그럴 필요 없이 타고난 재능과 적성으로 삶을 여유 있게 살아간다는 것을, 여러 모습으로 과시하고 싶어 했다. 일상의 유치한 단면을 통해서도, 가령 시험기간이라 공부에 매진해야 할 때 노래방 놀러 다니고 일탈하는 모습으로도, ‘욕심은 안 내지만 남들보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브랜딩 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스스로를 작게 느끼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대표적으로 박사를 LSU에서 하게 된 것, 여러 가지 모순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실제 내 실력이 이거밖에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높은 길을 향해 가고 싶은 욕망. 이렇게 육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나였기에, 인간적인 매력에다 정상급 실력까지 겸비한 곽윤기 선수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재미도 많이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적인 우울이 찾아왔다. 캠퍼스에서 한 두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 그가 지난 10년 넘게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따오는 동안, 그러면서 유튜버로서도 성공하는 동안, 나는 내 전공 분야에서 무얼 했나, 하는 자괴감 든 것이다. 박사과정 마무리 단계에서의 조급함이기도 하지만, 분명 욕심이다.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 인정받고 싶은 욕심, 중요한 역할을 맡아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을 투영해보니 그에 미치지 못한 내 모습이 보여 우울했던 거다.

오늘 아침 하나님은 잠언과 마가복음 말씀을 통해 이런 나의 오래되고 교묘한 육적 욕망을 직시하게 하셨다.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나은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왕이면 진수성찬 가득한 집에서 화목하길 바라는 욕망을. ‘성실한 삶의 태도’라고 포장한 내 모습에는 실상 겉치레와 세속적인 가치관이 누룩처럼 번져있음을. 재작년 가을, 어느 아침묵상 가운데 펑펑 울게 하셨던 그날에 이어 한 번 더 보게 하셨다. 아닌 척 깨끗한 척 하지만 누구보다 세상 성공에 마음을 크게 두고 달려가려는, 이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을.

만 5년이 다 되어가는 유학생활이 정말 하나님 허락하신 ‘광야’라면, 그 이유는 물질이 부족해서, 정서적 유대관계가 부족해서, 이방인으로 살아서가 아닌 것 같다. 모른 척 외면하고 싶던 내 안의 더러운 욕망을 마주하게 하시니, 그러니 여기가 광야다. 모세를 소명의 자리로 부르실 때 떨기나무에 불로 나타나신 하나님. 그리고 너의 신을 벗어라 하신 하나님. 발견한 이 욕망을 당신 앞에 내려놓고 신고 있던 신을 벗을 때, 그 때야 비로소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일까. 기대가 되면서도 두렵다. 아직은 탐욕스런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주님 불쌍히 여기사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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