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중반 즈음에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영적인 침체가 어떠한 형태로 찾아오든 그 끝에 결국은 하나님의 건지시는 손길이 있을 거라는 진리였다. 2015년 가을, 또다시 원인 불명으로 찾아오는 침체 가운데 스스로를 내어 맡기며 '이 침체의 끝에도 하나님 계시겠지', 이런 한가한 소리나 하며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사친 휘현이로부터 안부 연락이 왔고, 비신자인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신앙 상태를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 그저 우울하다는 한 마디 답장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저녁, 휘현이와 웅준이를 만나 피자를 먹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하며 가볍게 우울함을 달랬던 기억도. 그리고 그 다음날 버스 안에서 박성식 전도사님과의 짧은 카톡 가운데 '복음학교' 를 가보면 어떻겠냐는 권면을 받게 된 것까지 선명하다. 이 일련의 기억들, 남들 보기엔 별 일 아닌 일상의 파편이겠지만, 나로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통해 허락된 작은 즐거움과 신앙적인 권면 모두 어두운 터널이 비로소 끝날 전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복음학교 55기 (2015년 11월 30일 - 12월 5일) 는 구원의 기쁨과 경륜을 온몸의 감각과 지적 깨달음으로, 터질듯한 감격과 속이 뻥 뚫리는 명쾌함으로 경험한 귀한 시간이었다. 우울과 무기력에 가라앉아 있던 내 몸과 영이 말씀만으로 단박에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전에도 복음의 의미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으며, 여러 간증과 신앙 고백들을 올려드렸지만,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신비였다. 돌이켜보건대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죄인' 임을 100%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게 뼛속 깊이 인정이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는 등골 서늘한 위기감을 찐소름으로 느끼게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가 내 안에서 그에 합당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였다. 한없이 경배와 찬송, 영광을 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닳음도 그때만큼 절실했던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구원의 값어치가 심령에 매겨지는 순간이었다.
복음학교에서 철저하게 강조한 것은 '간절함' 과 '온전함' 이었다. 영혼의 구원에 있어 간절하지 않으면,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으면, 복음의 기적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해주신 것 중 하나가 '전심' 과 '진심' 의 차이였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복잡다단하고도 다중적인 존재여서 여러 가지 '진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 는 고백이 진심인 때에도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 또한 진심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일부의 진심만으로는 진실되게 거듭날 수 없다고 하셨다. 오로지 모든 마음, 전심을 드려야지만 거듭나고 변화받을 수 있다는 그 설명이 정말이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참으로 지저분했다. '안 그래도 좁은데 엉망으로 어지럽혀 둔 원룸' 같았다. 내 맘 다 모아도 한 줌뿐이지만, 이 작은 마음이라도 하나님이 받길 원하신다는 것. 이 보잘것없는 마음도 하나님 받아주신다는 것. 이 죄송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대적인 방청소 밖에 없었다. 찢어버린 현금 지폐를 조각조각 모아 테이프로 붙이는 것 같더라도, 나는 내 마음들을 다 모아야 했다. 떠나온 마음, 멀리 떠도는 마음,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내 마음. 나를 속이고 나의 주님을 속인 그 작은 마음 한 조각까지.
아무래도 하나님의 신실함을 쏙 빼닮지 못한 모양인지 '다 드리겠다' 던 저 고백이 되려 오늘을 붙잡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전심을 올려드린 순간이 있기에, 다 드리지 못하는 순간마다 그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때에도 모든 것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공급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죄송한지. 전심을 다하지 않고서는 감히 알현할 수 조차 없는 고귀한 분이신데도 늘 이 모자란 마음과 함께하길 원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정말 묵상할수록 이해 못 할 만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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