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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주 찬란함

by 가나씨 2020. 5. 21.

https://www.youtube.com/watch?v=MfhbdcwsMbY

 

           위싱찬양팀에서 창작 ccm 앨범을 제작하기로 한 후 멤버들은 각자의 고백으로 가사를 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시적 고백 자체를 처음 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들 고민이 많았다. 지금 와서 완성된 곡들을 하나씩 묵상하노라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마음이 얼마나 다 제각각 진실된 것들인지 느껴져 뭉클할 때가 많다. 멤버들 모두에게 첫 프로젝트였던 만큼 가장 절절하고 생생한 마음을 담았던 것 같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의 색깔과 성향이 묻어났기에 곡 초안을 처음 나누면서 서로 많이 웃었던 기억도 난다.

 

           어떤 고백을 찬양으로 만들까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연희관 벤치에서의 에피소드였다. 햇볕이 쨍한 어느 가을날, 약간 다운된 감정을 갖고 연희관 앞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왜 싱숭생숭했는지, 왜 가라앉아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에는 등받이가 없는 그 벤치에 앉아있다 눈이 너무 부셔서 뒤돌아 앉았던 게 선명히 기억난다. 그러니까 건물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있다가 반대로 정원을 등지고 건물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꿔 앉은 것이다. 비의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뮤비 한 장면에도 어울릴 법한 장면이었다.

 

 

등받이가 없는 연희관 앞 벤치. 이렇게 앉아있다가 해가 너무 눈 부셔서 반대로 돌아 앉았다.

 

 

           문제는 그날의 가을 햇살이 너무나 쨍-했다는 것이다. 해를 등 지고 앉았는데도 온통 햇빛 투성이었다. 물론 눈만 부신 게 아니라 따뜻한 햇살에 나른하기도 했지만 시각적인 자극이 더 컸다. 사방이 다 환했으니까. '해를 등지고 있어도 눈이 부시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러다 문득 그게 하나님과 나 사이의 어떤 장면 같았다. 하나님의 찬란함이 너무 눈 부셔서, 그 영광이, 그 사랑이, 그 은혜가, 그 공의로우심이 너무나 쨍-해서 내가 아무리 그분을 외면하고 그분으로부터 등을 돌려도 소용없을 거라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사실 가장 초기버전의 verse 가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햇~살보다 찬란한 주~님 크신 사랑은 등~을 지고 살아도 여전히 눈이 부시네

 

          이때가 아마도 능동적으로 나 자신의 인간 된 실체를 마주하기 시작했던 시기 같다. 나의 죄성, 나의 반역성, 내 안의 사랑 없음... 그 적나라한 실체를 바로 바라보게 되면서 괴로운 마음이 하나 둘 자라났다. 이에 반해 내가 알아가는 하나님은, 알면 알 수록 옳으시고 흠이 없으시고 완전하신 분이셨다. 그게 인정이 되었다. 그 온전하심이 나의 바닥과도 같은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될 때면 그 이질감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이 또한 얼마나 지독한 자기애인가 싶어서 그것마저 괴로웠다. 스스로를 정죄하는 모습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 괴로움이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다만 믿음으로 이겨내야 할 감정이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처참한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떼 구원을 베푸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 그분의 찬란함을 소망으로 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은 이 가사를 쓰던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때는 마음이 더 어렸다. 더 순수했다. 해를 등 지고 앉아도 눈부신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아도 그분이 날 떠나지 않을 거라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동요 같이 밝은 멜로디가 나왔나 보다. 지금은 굳이 굳이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해야지만 그 믿음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죄인 된 내 모습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5년 동안 세상의 때가 많이도 탔나 보다.

 

          그렇게 세상에 때 묻어 간 지난 시간들 동안 이 밝고 통통 튀는 찬양을 부르며 엉엉 울던 날들이 참으로 많았다. 룰루랄라 기쁜 마음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같은, 혹은 방황하는 탕자 같은 나의 처지를 주님 앞에 내어드리며. 삶에 어떤 빛도 들지 않는 것 같은 어두운 순간들 올려드리며. 그렇게 나날이 초라해져 가는 나에게 하나님의 눈부신 찬란하심이 소망이 된다는 진리가 오늘도 나를 세운다. 찬양 가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음에 주신 가사들은 그 이후의 나날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두신 위로임이 틀림없다.

 

 

작사작곡 초기 단계. 이렇게 음악 노트에다 손으로 직접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그리곤 했다.

 

 

          함께 작업했던 날들은 '찬양으로 행복했던 시간'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토요 모임 때 서로의 가사를 나누고 같이 수정하던 장면, 둥그렇게 둘러앉아 chorus 녹음하며 한 바탕 웃었던 순간, 야식 먹어가며 솔로 파트 화음 파트 녹음했던 밤들.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며 고생 많으셨던 박성식 전도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그 순간을 함께 한 모든 위싱 멤버들, 한 명 한 명 다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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