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한국에 들어가 오랜만에 만난 대학 후배 정미는 프리랜서 작가가 되어있었다. 퇴사 후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엮어 책을 냈다고 했다. 하루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대학 선후배 사이에는 아무래도 글로 풀어내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캐주얼하고 가벼운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다.
다시 미국에 들어오며 책을 사 들고 오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얼마 전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다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구매해 읽었다. 쉽게 읽히는 글이었지만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년 여름, 종로에서의 그 짧은 만남 동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 걸, 더 진지하게 마음을 터놓을 걸, 이런 아쉬움들이 글의 여운으로 남기 때문이었다. 제목을 보고는 '내가 아는 정미답다' 생각했는데 글을 읽어가면서는 내가 모르던 정미의 모습이 참 많이도 보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여행 에세이로 읽을 것이다. 누군가는 퇴사와 프리랜서의 삶, 이런 진로의 관점에서 글을 읽어 내려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의 포커스는 둘 다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포커스는 정미였다. 정미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며 뭉클해진 순간들이 많았는데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감동의 포인트는 하나였다. 책의 시작과 끝이 많이 달랐다는 것.
정미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이후 주변으로부터 '부럽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는 내용으로 책을 시작한다. 공감대가 적은 지인들에게 매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피로감을 느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이어지는 몇몇 챕터들 속에서 나는 그와 비슷한 결의 부러움을 여러 번 마주할 수 있었다. 하나의 존재를 다 같이 사랑하는 도시를 알게 되고, 많은 것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도시를 다니며, 또 익숙한 풍경에도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사는 정미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정미는 그 낯선 곳들의 일상과 문화들을 부러워했던 것도 같다. 거창한 말로는 '가지지 못하는 것,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이겠지만, 일상에 지친 누구라도 갖고 있을 법한 그런 부러움이었다.
그 부러움이 만족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 큰 변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작고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책이기도 했다. 정미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창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하고 싶은 일'을 검색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를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그 솔직한 마음 또한 찬찬히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다정한 그 마음은 결국 '정미에게 있어서 정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발걸음이 되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어느 순간부터 부러움의 시선이 거두어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충만한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다. 정미 그대로의 삶. 정미의 삶. 그 고유함과 진솔함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이 나에게도 전해졌던 것 같다.
어느 챕터에선가 대학 시절 엠티의 한 장면이 잠깐 나온다. 우리는 여러 차례 엠티를 함께했고 아마 그 엠티도 같이 한 자리였을 거다. 재밌는 에피소드들, 밤을 지새가며 나눈 대화들이 많이도 쌓인 추억이지만 이 친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알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시간들이었다. 함께한 시간들보다 이 짧은 한 권의 에세이를 통해 정미를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쌉싸름하기도 하다. 그러나 감사한 일이다. 올 겨울이 될지 내년 여름이 될지 다시 만날 때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때에는 조금 더 깊이 정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아 물론, 모든 것이 풋풋하고 설렜던 대학 시절을 함께한 인연이라 하이텐션에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들로도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정미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의 시선이 마냥 철없지만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함께했던 시간 이후에야 서로를 더 알아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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